폴저 셰익스피어 라이브러리
이번 주에 한번 이미 새벽 4시까지 일했고, 오늘도 날밤 새야 할 팔자. 이 와중에, 폴저 셰익스피어 라이브러리 생각이 나는 건 뭐람. 워싱턴 D.C.에 있는 이 도서관에 언제쯤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이런데서 한 달쯤 푹 썩으며 <맥베스>나 뒤적이는 날이 언제쯤 올까.
답답함
S선생과의 대화.
나: 여차저차 그래서 ‘이주’ 공부하러 간대요.
S: 또 이주?
나: 그러게 말이에요.
공부하러 가는 거 안 말린다. 공부하는 거 좋다. 이주 공부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느낌, 나 역시 받는다. 박사논문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리고 이주 문제가 이론적인 발전이 필요한 단계라는 거, S선생이나 나나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의 속이 뒤집히는 이유는, 그 지적 ‘유행’의 물결이다. 탈주건, 다중이건, 호모 사케르건, 이주건, 유행처럼 번지는 느낌. 한국의 실제 현실과는 상관 없이 유행가처럼 번지고 있는 이 느낌.
내가 출간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인들의 난민 학살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서 한 권을 읽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자의 책이고, 훌륭하다. 왜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는 연구가 생산되지 않는 걸까.
이래저래 마음이 답답하다. 성향만 진보적일 뿐 실제로는 후지기 그지 없는 원고들을 만지면서 스스로를 위무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할 터이다. 마음이 참으로 답답하다.
조용히 존재가 사라지는 것
어제는 돌아가신 선생님 꿈을 꾸었다. 공항에서 선생님이 그 긴, 긴, 팔을 휘둘러 아는 체하며 어설픈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유니, 유니, 왜? 그러셨던 것 같다. 선생님이 할 줄 알았던 한국말은 몇 개 안 되었지만, “왜?”라는 말은 꽤 많이 사용하셨더랬다. 왜? 왜? 왜? 그 말을 들으면 그 “왜?”가 실제로는 무슨 뜻인지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내 꿈속에 나타난 선생님은 왜 자꾸 “왜?”라고 물으셨던 걸까.
“우리 그만 만나자”라는 말은, 통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조용히 유통기한 지난 관계들 속에서 내 존재를 잊혀지게 만들고 있다.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동생이 다음 주면 미국에 간다. 또 한 사람이 한국을 떠난다. 마음이 좋지 않다.
…
- 어저께, 회사 후배가 나에게 심란한 마음을 열어보일라 치길래, 농담으로 그 말을 막아버렸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너그러이 사람들 마음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도 없다. 그냥 내 일이나 똑바로 하고, 내 마음이나 건사하고 살기도 바쁜 것이다.
- 인쇄 감리를 갔다가 실수를 했다. 감리 가서 찍어온 샘플 들고, 혼자 내내 속상해서 자책 중이다. 남한테 창피한 게 아니라 스스로한테 창피한 게 더 큰 문제다.
- 경쟁적 시스템 속에 있으면서, 나 역시 그 안에 있고 그것을 피곤해 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 추한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나라고 왜 욕심이 없겠는가마는, 부디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그런 이들을 대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불쾌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울컥 짜증이 밀려들지만, 그러다가도 내가 거기에 대응하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 그냥 말로는 져줘버린다. 물론 말로만 져줄 뿐 실제로 그런 사람에게 내 패를 보여주는 바보짓까지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 때면 그 생각들이 떠올라 잠이 안 온다.
- S 선생이 속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으시다 하셨지만, 말씀드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물어봐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관계로 생각하시는 것이라면 정말 감사할 따름이지만, 결국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이 무엇이었든 상대방이 알면 피곤해질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덮어둘 것은 덮어두면 된다.
책 한 권, 토해내다

나름 고생은 했는데, 편집자로서 살짝 창피한 책이다. 의미가 없는 책이라는 뜻은 아니고, 좀더 의미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뜻에서. 책 나온 후 출간 기념으로 당비 선생님들이랑 만났는데, 여차저차 나로서는 공식적으로 당비 회의에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렇게 된 상황을 떠올리면,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하고 아쉽다.
그래도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즐거웠고, 가끔 짠했고, 특히 서동진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웠다. 하지만 이쯤해서 마음을 떼는 게 나에게는 좋을 것이다. 모두들 무사히, 건강히, 좋은 글 쓰셨으면 하는 바람만 한가득이다.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오후의 명동, S 선생과 만나 노닥노닥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로서는 조금 송구스러운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 자리였는데, 선생님과 노닥거리다 보니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었다.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들.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S 선생을 만나서 얘기하는 게 일할 때의 큰 낙이었는데, 이제 일을 핑계로 그럴 일은 없어질 것 같다.
커피숍을 빠져나와 사람들이 쏟아져 돌아다니는 명동 거리를 함께 걷다 보니 이내 나른해졌다. 이렇게 봄은 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보도자료
8개월 만에 보도자료를 쓰고 있다. 그간 글쓸 일이 거의 없었다. 정말 제대로 미치고 있다. ㅋ